들어가며
상표권 침해와 관련해 중요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최근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명품 가방 리폼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리폼 서비스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서울고등법원의 상표권 침해 판결(2023나11283)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의 “상표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그 근거
이번 판결에서 피고는 자신의 리폼 행위가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 관점에서 주장했습니다. 각각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소비자의 리폼 자유에 기반한 주장
피고는 우선 소비자의 권리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이미 정당하게 구매한 제품에 대해 소유자는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리폼의 자유도 포함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는 자신들의 행위는 단지 소비자의 이러한 정당한 권리 행사를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리폼 의뢰인들이 원고와의 경쟁 관계가 전혀 없는 일반 소비자들이라는 점을 들어, 상표권 침해의 우려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2. 상표의 사용 방식에 관한 주장
피고는 리폼 과정에서 이루어진 상표 사용이 ‘상표로서의 사용’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원단에 표시된 상표는 단순히 디자인적 요소로 사용되었을 뿐, 출처표시 기능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피고는 자신들이 상표를 새로 만들어 부착하지 않았고, 단지 원래 있던 상표가 표시된 원단을 그대로 사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 상표권 소진 이론에 근거한 주장
피고는 상표권 소진 원칙을 강력한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상표권자가 국내에서 상품을 적법하게 판매한 경우, 해당 상품에 대한 상표권은 소진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판매된 제품에 대해서는 상표권자가 더 이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리폼이 제품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의 가공이라고 주장하며, 소진된 상표권을 근거로 한 권리 주장은 부당하다고 강조했습니다.
4. 지속가능성과 업사이클링 관점의 주장
현대 사회의 중요한 가치인 지속가능성을 근거로 한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피고는 자신들의 리폼 행위가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고 자원을 재활용하는 친환경적 활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수명을 다한 제품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의 관점에서, 이러한 활동은 오히려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5. 표현의 자유 관련 주장
피고는 리폼 행위가 헌법상 보장된 예술적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가방을 어떻게 변형하고 가공하는지, 어떤 재료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는지는 창작적 표현의 영역이며, 이는 상표법에 의해 제한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위와 같은 피고의 주장들은 모두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으나, 법원은 이러한 주장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법원은 개인의 비영업적 리폼과 영업으로서의 리폼을 명확히 구분하여, 후자의 경우 상표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법원이 왜 이러한 피고의 주장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원의 상표권 침해 인정 근거 – 5가지 핵심 요소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리폼 서비스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구체적인 근거를 5가지 핵심 요소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리폼 후 제품의 상품성 인정
법원은 우선 리폼된 제품이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했습니다. 판결에 따르면, 리폼 후 제품은 그 자체로 교환가치를 가지고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고가의 명품 리폼 제품이 중고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상품성 판단에 있어 대량 생산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단 1개만 생산되더라도 계속성과 반복가능성이 있다면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2. 상표의 사용 행위 인정
다음으로 법원은 피고의 행위가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는지 검토했습니다. 피고가 리폼 과정에서 원단에 표시된 상표를 그대로 새로운 제품에 사용한 것은 상표법 제2조 제1항 제11호 (가)목의 ‘상품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리폼된 제품을 주문자에게 인도하는 행위도 동법 (나)목의 ‘상품의 인도’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은 이때 ‘인도’는 물건에 대한 점유 이전을 의미하며, 반드시 소유권 이전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3. 업무관련성의 명확한 인정
법원은 피고의 행위가 ‘업으로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피고는 독립된 영업으로 다수의 주문자로부터 대가를 받고 반복적으로 리폼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특히 법원은 개인이 자신의 가방을 직접 리폼하는 비영업적 행위와, 영업으로서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전자는 상표권 침해가 되지 않지만, 후자는 상표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4. 출처표시 기능의 인정
법원은 리폼 후 제품에 표시된 상표가 출처표시 기능을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음 네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습니다:
- 상품과 상표의 관계
- 리폼 후 제품이 상표의 지정상품과 동일/유사
- 도형 상표의 높은 식별력
- 상표 사용 태양
- 외부 원단에 상표가 눈에 띄게 표시
- 일반수요자의 쉬운 인지 가능성
- 상표의 주지저명성
- 국내외 수요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상표
- 원고의 특징적인 상표 사용 방식의 인지도
- 사용 의도
- 원고 제품과 유사한 형태로 제작
- 저가로 유사 제품을 얻으려는 수요 충족 목적
5. 혼동가능성의 인정
마지막으로 법원은 일반 소비자의 혼동 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리폼을 의뢰한 당사자는 출처를 정확히 알고 있더라도, 이후 중고시장에서 해당 제품을 접하는 제3자는 출처를 오인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법원은 피고가 혼동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예: 리폼 제품임을 명시하는 표시)를 취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습니다.

리폼 업체가 주목해야 할 실무적 가이드라인
이번 판결은 명품 리폼 시장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특히 리폼 업체들과 상표권자들이 주목해야 할 실무적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리폼 업체의 대응 방안
가. 상표 표시의 처리방안
리폼 업체는 우선적으로 상표 표시 처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원단에 표시된 상표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운 경우, 다음과 같은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상표가 표시된 부분을 가리거나 최소화하는 디자인 채택
- 상표가 눈에 띄지 않는 위치로 재배치
- 가능한 경우 상표가 없는 부분의 원단만 사용
나. 리폼 제품임을 명확히 표시
법원은 특히 리폼 제품임을 명확히 표시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으로는:
- 제품에 “리폼 제품” 라벨 부착
- 리폼 이력을 기재한 품질보증서 발급
- 리폼 업체의 독자적인 브랜드 태그 부착
- 원제품과 구별되는 시리얼 넘버 부여
다. 계약관계의 명확화
리폼 의뢰인과의 관계에서도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 리폼 서비스 계약서 작성
- 리폼 후 제품의 사용 제한 사항 명시
- 재판매 금지 조항 포함
- 면책 조항 구체화
2. 상표권자의 대응 전략
가. 합법적인 리폼 시장 참여
상표권자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음과 같은 전략적 접근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공식 리폼 서비스 도입
- 인증된 리폼 업체 지정 제도 운영
- 리폼 가이드라인 제시
- 친환경 이미지 제고를 위한 리폼 정책 수립
나. 상표권 보호를 위한 모니터링
지속적인 시장 모니터링도 중요합니다:
- 온/오프라인 리폼 시장 감시
- 위법 사례 데이터베이스 구축
- 경고장 발송 기준 수립
- 법적 대응 매뉴얼 마련
3. 양측의 상생 방안
가. 라이선스 계약 체결
상표권자와 리폼 업체 간 라이선스 계약을 통한 win-win 전략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공식 인증 리폼업체 지정
- 품질 관리 기준 공유
- 로열티 지급 구조 확립
- 기술 및 노하우 공유
나.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 발전
환경 보호와 상표권 보호의 균형을 위한 협력 방안도 모색해야 합니다:
- 공동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진행
- 친환경 리폼 가이드라인 제정
- 소비자 교육 프로그램 운영
- 산업 표준 확립을 위한 협력
결론
이번 판결은 명품 리폼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리폼 업체들은 적법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위해 위의 실무적 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상표권자들도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특허사무소 소담은, 변리사 출신의 변호사와, 대기업 소송 담당 변리사가 함께, 상표권 등록부터 침해 소송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장 똑똑할 수는 없지만,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