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침해 경고장을 받으면 제품 판매를 즉시 중단해야 할까요.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특허권자 측이 직접 올려둔 홍보 블로그 한 건으로 그 특허의 권리범위 자체를 무너뜨리고, 자기 제품이 권리범위 밖에 있음을 특허심판원에서 공식 확인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2021년 2월 선고된 특허심판원 2019당4062 심결(제6부)이 그 실례입니다. 본 글에서는 반려동물 드라이룸 사업자가 경고장을 받은 후 권리범위확인(소극)심판과 자유실시기술 항변으로 승소한 과정을 차례대로 정리합니다.
1. 사건 개요 — 경고장에서 심판 청구까지
이 사건의 시작은 2019년 11월 28일 청구인에게 도착한 한 장의 내용증명이었습니다. 특허권자 측 대리인 사무소가 보낸 2차 경고장은 “청구인이 판매 중인 펫 드라이어 제품이 특허 제1557129호 「펫 드라이 룸」을 침해하고 있으니 즉시 판매를 중단하고 침해 인정 및 재발 방지 약속, 손해배상에 응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청구인의 대응은 명확했습니다. 2019년 12월 19일 특허심판원에 권리범위확인(소극)심판을 청구한 것입니다. 이어 2020년 6월 16일 확인대상발명의 설명서와 도면을 보정해 구성을 더 명확히 했고, 자유실시기술 항변과 구성요소 결여 논리를 병행 제시했습니다. 피청구인인 특허권자는 심리 종결 시까지 답변서도 의견서도 일체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021년 2월 24일, 특허심판원 제6부는 확인대상발명이 이 사건 특허(특허 제1557129호) 제1항 및 제3항 내지 제15항 전 청구항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는 인용 심결을 내렸습니다. 심판비용도 피청구인이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적극 심판과 소극 심판의 차이
권리범위확인심판은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특허권자가 “저 제품은 내 특허권 안에 있다”고 확인받는 절차. 주로 침해 경고나 소송 전 정지작업으로 활용.
-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실시자가 “내 제품은 그 특허권 밖에 있다”고 선제적으로 확인받는 절차. 경고장 수신자·침해소송 피고가 방어 카드로 활용.
본 사건은 후자의 전형적인 활용 사례입니다. 경고장을 받은 사업자가 수세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먼저 특허심판원에 찾아가 공식 판단을 받아낸 것입니다.
2. 승소 법리 ① 자유실시기술과 신규성 부정
청구인이 가장 먼저 펼친 공격은 “이 사건 특허 자체가 사실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는 논리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출원일보다 앞선 시점에 이 특허 발명의 모든 구성이 공개되어 있었다는 입증입니다.
결정적 증거는 2013년 10월 30일 네이버 블로그 ‘VUUM STORY’에 게시된 ‘VUUM Pet Dry Room PDR-2000’ 제품 소개 글이었습니다. 이 블로그 게시물에는 PDR-2000 제품의 사진과 함께 “복잡하고 힘든 애완동물 드라이와 편안한 보금자리, 이제 VUUM Pet Dry Room에 맡겨 주세요”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고, 제품의 주요 특징으로 음이온 비타민 드라이, 탈취 항균 기능, 항공기 기내 난방 시스템 방식의 PTC 히터, 저소음 설계, 휴대·보관이 용이한 분리 구조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 특허의 출원일이 2013년 10월 31일이라는 점입니다. 출원 단 하루 전에 이미 동일 구조의 제품이 공개된 상황이었습니다. 특허법 제29조 제1항은 출원 이전에 공개된 기술은 신규성이 없어 특허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허심판원은 이 블로그 사진과 본문을 이 사건 특허의 15개 청구항과 구성요소별로 1:1 대비했습니다. 그 결과 제1항·제3항부터 제13항·제15항까지 총 13개 청구항의 신규성이 부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아치형 베이스, 제1·2측면판, 건조모듈, 지퍼, 통풍창, 벨크로 테잎, 개구부, 비닐커버, 걸림턱, 연결부재, 조임끈, 직물소재, 하우징, 흡입팬, 토출팬, PTC 히터, 항균탈취 킷, 타임 스위치, 손잡이 구성이 모두 블로그 게시물에서 직접 확인된다고 정리했습니다.
신규성이 부정된 청구항은 권리범위 자체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확인대상발명이 해당 구성을 사용하든 말든 침해 문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논리가 실무에서 말하는 자유실시기술 항변입니다. “이미 공개된 기술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법리로, 특허권자가 등록한 특허가 실제로는 출원 전에 공개된 기술이라면 제3자의 실시를 제한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특이한 점은 PDR-2000 제품이 시장에 내놓인 경로 자체가 특허권자와 관련된 유통 채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사 홍보를 위해 블로그에 올린 제품 사진이 결과적으로 자기 특허의 신규성을 무너뜨리는 증거가 된, 일종의 부메랑 구도입니다. 자유실시기술 항변의 디자인판에 해당하는 사례는 디자인 침해 주장받았는데 이미 있던 디자인이라면? 자유실시디자인 항변 해설에서 별도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3. 승소 법리 ② 구성요소가 하나라도 결여되면 권리범위 밖
15개 청구항 중 신규성이 부정되지 않은 유일한 청구항은 제14항이었습니다. 제14항은 “본체 내부에 에어 가이드가 구비되며, 그 에어 가이드에는 멀티 팬이 더 구비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종속항입니다. 비교대상발명(PDR-2000)에는 이 구성이 확인되지 않아 제14항의 신규성은 인정됐습니다.
그렇다면 제14항이 살아 있는 한, 이 청구항만으로도 확인대상발명이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지가 남은 쟁점입니다. 여기서 구성요소 결여 법리가 작동합니다.
특허발명과 대비되는 확인대상발명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특허발명의 특허청구범위에 기재된 각 구성요소와 그 구성요소 간의 유기적 결합관계가 확인대상발명에 그대로 포함되어 있어야 하며, 특허발명의 청구항이 복수의 구성요소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체로서의 기술사상이 보호되는 것이지, 각 구성요소가 독립하여 보호되는 것은 아니므로, 특허발명과 대비되는 확인대상발명이 특허발명의 청구범위의 청구항에 기재된 필수적 구성요소들 중의 일부만을 갖추고 있고 나머지 구성요소가 결여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그 확인대상발명은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
— 특허심판원 2019당4062 심결문 13~14페이지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10후296 판결, 대법원 2001. 12. 24. 선고 99다31513 판결 등 참조)
쉽게 말해 특허 침해가 성립하려면 청구항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가 확인대상발명에도 존재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결여되면 그 청구항의 권리범위 밖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실무상 ‘올 엘리먼트 룰’이라 불리는 원칙입니다.
청구인은 확인대상발명의 본체가 투명 비닐로 되어 있다는 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투명 본체 내부에 에어 가이드나 멀티 팬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출한 도면 사진 자체로 입증한 것입니다. 심판원도 이를 받아들여 “확인대상발명은 이 사건 제14항 발명의 구성인 에어 가이드와 멀티 팬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제14항 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신규성이 부정된 13개 청구항(제1항, 제3항~제13항, 제15항)과 구성요소가 결여된 1개 청구항(제14항)을 합쳐 15개 청구항 전부가 권리범위 밖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4. 경고장 받은 사업자가 취할 수 있는 3가지 선택지
특허 침해 경고장을 받았을 때 실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사실 조사 후 대응 협상
상대 특허의 청구항과 자사 제품을 구성요소별로 비교해 침해 위험이 실제로 있는지 분석합니다. 위험이 확인되면 라이선스 협상, 설계 변경, 회피 설계로 전환하는 방향을 검토합니다. 침해 여부가 애매한 경우에 먼저 시도되는 방식입니다.
② 권리범위확인(소극)심판 청구 — 본 사건 방식
자사 제품이 상대 특허의 권리범위 밖임을 특허심판원에서 공식 확인받는 절차입니다. 심결이 확정되면 이후 침해소송에서도 유력한 방어 자료로 활용됩니다. 본 사건처럼 자유실시기술 항변이나 구성요소 결여를 논리로 펼칠 수 있으며, 심판관 3인 합의체의 공식 판단을 선제적으로 확보한다는 점에서 위력이 있습니다.
③ 특허 무효심판 병행
상대 특허 자체가 신규성·진보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무효심판으로 특허권 자체를 제거하는 방향입니다. 다만 이해관계인 요건과 입증 부담이 있어 권리범위확인(소극)심판보다 난이도가 높은 편이며, 소극 심판과 병행해 활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고장 수신 후 실무 검토 순서와 자료 준비 방법은 상표권침해 경고장 받은 경우, 의뢰인과 변리사가 검토해야 할 사항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상 권리가 상표인 사례지만 특허·디자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검토 순서를 정리해 두었습니다.
5. 실무 시사점 — 출원 타이밍과 마케팅의 동기화
이 사건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특허권자 본인이 자기 제품을 먼저 공개해 자기 특허를 무력화시킨 구조”입니다. 출원일(2013.10.31.)과 블로그 게시일(2013.10.30.) 사이 격차는 단 하루. 이 하루 차이가 15개 청구항 중 13개의 신규성을 통째로 무너뜨렸습니다.
신제품 출시 일정과 특허 출원 일정을 동기화하지 않으면, 마케팅·홍보팀이 좋은 의도로 올린 제품 소개 글이 자기 특허의 유일한 증거로 사용되어 권리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습니다. 신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 다음을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 출원 전 공개 금지 원칙: 특허 출원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제품 사진·설명서·블로그 포스팅·유튜브 영상·크라우드펀딩 페이지 등 일체의 대외 공개를 보류합니다.
- 공지예외 주장의 한계: 본인이 출원 전 공개했더라도 12개월 내 출원하면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특허법 제30조)가 있으나 증명 부담과 요건이 까다롭습니다. 처음부터 공개하지 않는 편이 가장 안전합니다.
- 선행문헌의 확장: 특허심판원과 법원은 학술 논문·특허공보뿐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쇼핑몰 게시물·유튜브 영상 등 인터넷 공개 자료 전부를 게시일이 확정되는 한 유효한 공지 증거로 채택합니다. 본 사건의 결정적 증거도 네이버 블로그 1건이었습니다.
6. 마무리 — 경고장 대응의 선제적 방어 수단
본 사건은 경고장을 받은 사업자가 수세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특허심판원이라는 공식 기관을 통해 “내 제품은 당신 특허권 밖에 있다”는 결론을 선제적으로 받아낸 대표 사례입니다. 이 심결 이후 특허권자가 침해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동일한 논리를 반복 제기하기 어려워지며, 사업자는 안정적으로 제품 판매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소담IP가 자체 집계한 2020~2025년 특허심판원 통계 기준, 본 사건과 같은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의 청구인 인용률은 84.7%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단일 승소사례를 넘어, 경고장을 받은 사업자에게 통계적으로도 유효한 방어 수단임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 후속 통계 분석 글에서 상세 분해 예정)
권리범위확인심판은 심판관 3인 합의체가 판단하는 준사법적 절차로, 통상 청구 접수 시점부터 심결까지 6개월~1년 6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소송보다 비용·시간 부담이 낮고, 침해 여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확정적으로 정리해 준다는 점에서 경고장 수신자에게 매우 유용한 선택지입니다. 같은 절차를 상표권 분쟁에 활용해 성공한 사례는 상표 권리범위확인심판 승소 — 음식점 간판에 남의 서비스표를 쓰면?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허 경고장을 받으셨다면 단독 판단보다 먼저 변리사 검토를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특허사무소 소담은 본 사건을 포함해 특허·상표·디자인의 권리범위확인심판, 무효심판, 침해소송 방어 사건을 다수 대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고장 단계에서의 대응 방향 설정이 이후 분쟁 전체의 결과를 좌우하는 만큼,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상담을 받으시는 편이 유리합니다.
경고장이 심판 단계에서 정리되지 않고 법원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디자인 침해 경고장, 심판원에서 졌어도 법원에서 뒤집힌다 — 확인대상 디자인 특정의 실무 글에서 별도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허 침해 경고장, 혼자 대응하지 마세요
경고장의 내용, 제품 구성, 상대 특허 청구항을 함께 검토해 권리범위확인심판·무효심판·협상 중 최적 경로를 안내해 드립니다.
구체적 사안별 검토가 필요하시다면 특허사무소 소담 온라인 상담을 통해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